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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약함 위에 쌓인 시간 — 박정은의 《Stage Mix》 다시 읽기

 

 

2021년 겨울, 서울 성북구에 자리했던 전시 공간 Faction에서 독특한 릴레이 형식의 전시 《Stage Mix》가 열렸다. 현재 서대문구로 이전한 Faction은 당시 성북구 공간에서 문현정, 박정은, 김아름 세 작가의 개인전을 릴레이 형식으로 선보였다. 그중 박정은의 전시는 깨지기 쉬운 취약하고 불안정한 물질을 통해 우울과 불안의 불편함을 감각적으로 그려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학부를 마치고 미국에서 RISD 유리 대학원을 졸업한 박정은 작가는 현재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글은 박정은의 첫 개인전 《Stage Mix》를 회고하며, 신체성과 일상 미학에 바탕을 둔 현재 작업의 출발점을 되짚는다.

 

 


 

불안정성이 만드는 긴장과 청각적 변주

 

전시 공간에 들어온 관객은 한없이 연약한 물체들에 둘러싸여, 미묘한 긴장을 느끼게 된다. 그 후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중앙에 위치한 제단을 연상시키는 구조물이다. 흰 천으로 덮인 지형 위에는 분홍과 엷은 녹색의 파스텔 톤의 석고 꽃들이 놓여 있다. 부드럽고 아름다운 색감이지만, 건드리면 바로 부서질 듯 위태롭게 서 있다.

 

이 전시의 대표작 Elegant Vomiting은, 작가가 우울증을 극복하던 시기의 경험에서 출발한다. 매일 항우울제를 먹어야만 했던 작가는 본인이 유일하게 밖에 나갈 수 있던 밤마다 약과 동일한 색의 꽃을 마치 토해내듯 하나씩 만들었다, 이 작품은 약물에 의존해야 했던 작가의 심리적 거부의 증명이며, 토해냄의 반복을 통해 축적된 작은 꽃 조각들은 제단 위에서 아름다운 꽃밭으로 펼쳐진다.

 

그 옆에서 우뚝 선 하얀 인물상 Warrior는 판타지 게임 속 여성 캐릭터의 이미지를 차용한다. 보호 장비 없이 노출된 신체와 장식적인 외형은 강인함과 취약함이 동시에 부여된 존재를 드러낸다. 이는 전시 전반에 흐르는 연약함을 다른 층위에서 반복한다.

 

전시장 깊숙이 들어서면, 공간을 가득 채우는 끊임없는 물소리의 근원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하얀 도자기로 만들어진 3단 분수 작품 The Fountain of Cravings이다. 이 작업은 작가가 어린 시절 ‘파랗게 묘사되는 물’과 실제 물 사이의 괴리를 인식하며 느꼈던 불편함에서 출발한다.

 

 

 

끊임없이 솟구치고 순환하는 하늘색 물은 전시 전반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청각적 장치로 작동하는 동시에, 앞선 작업들이 쌓아온 무거운 정서 속에 낯선 밝음으로 다가온다.

 

흔들리는 상태에 머무르기

 

박정은의 전시는 취약하고 불안정한 상태를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도자, 유리, 석고처럼 쉽게 깨질 수 있는 재료들은 진열장 없이 공간에 놓이고, 관객은 긴장 속에서 움직이게 된다. 특히 전시가 열릴 당시 작가가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유리는 전시 전체의 감각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작가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깨지거나 흐뜨러지기 쉬운 것들은 다른 것들보다 더 조심스럽게 다뤄집니다. 저는 그렇게 소중히 다루게 되는 태도가 제 작품들에게 가치를 부여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최근에 접하게 된, 한없이 변덕스러운 유리를 통해, 저는 불안정한 상태를 흠이 아닌 흥미로운 재료적 특성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마음 한켠이 편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저는 이 전시가 아름다운 반짝임과 물소리 속에서 연약함과 불안정성에 대해 새롭게 사유할 수 있는 경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정은의 《Stage Mix》 는 2021년 11.04 – 11.14 총 10일 동안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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