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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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법이 쥐여준 합법적 스토킹 도구, '주소보정명령'

 

국가의 사법 제도가 오히려 가해자의 범죄를 돕는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안타깝게도 현재 대한민국의 소송 절차가 그렇다. 민사소송의 '주소보정명령' 제도를 악용해 피해자의 은신처를 찾아내고 보복 범죄를 저지르는 끔찍한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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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가 피해자의 주소를 알아내는 수법은 소름 돋을 정도로 간단하고 또 완벽하게 합법적이다. 소액의 허위 채권이나 억지스러운 사유를 꾸며내 민사소송을 제기한 뒤, 고의로 주소를 잘못 기재해 법원으로부터 주소보정명령을 받아내는 식이다. 이 종이 한 장만 있으면 가해자는 전국 어느 주민센터에서든 단돈 몇백 원에 피해자의 상세 거주지가 적힌 주민등록초본을 합법적으로 발급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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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치명적인 맹점은 피해자가 자신의 주소가 유출되었다는 사실을 사전에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스토킹이나 가정폭력 피해자를 위한 '주민등록표 열람 및 교부 제한 제도'가 존재하기는 한다. 하지만 이는 피해자가 직접 범죄 피해 사실을 입증해 사전에 신청해야만 작동하는 반쪽짜리 방패에 불과하다. 미처 제도를 신청하기도 전에 가해자가 기습적으로 소송을 제기한다면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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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가해자를 피해 연락을 끊고 숨어든 피해자는 자신을 상대로 소송이 제기되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어느 날 갑자기 문 앞까지 찾아온 가해자를 마주해야 한다. 국가의 공적인 시스템이 피해자의 마지막 방어막을 강제로 해제해 가해자의 손에 쥐여주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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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선진국들의 사례를 보면 우리의 제도가 얼마나 행정 편의주의에 머물러 있는지 알 수 있다. 다수의 국가에서는 사법 및 행정 절차에서 피고의 개인정보 노출을 철저히 차단하며, 특히 원고가 직접 피고의 상세 주소를 열람하거나 취득할 수 없도록 엄격한 블라인드 제도를 운영한다. 반면, 우리는 '원고의 재판받을 권리 보장'이라는 기계적인 법리 해석에 갇혀 '피해자의 생명권과 안전'을 방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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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제도는 정의를 실현하고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법원의 소송 절차가 보복 범죄를 위한 '합법적 흥신소'로 전락한 작금의 현실은 입법부와 사법부의 명백한 직무 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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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이나 가정폭력 등 범죄 이력이 있는 자의 정보 열람을 엄격히 제한하고, 소송 서류 송달 과정에서 원고에게 피고의 주소가 직접 노출되지 않도록 제3의 기관이 송달을 대행하는 등의 전면적인 시스템 개편이 시급하다. 법의 맹점이 범죄자의 가장 날카로운 흉기가 되게끔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제도의 구멍으로 흘러내리는 것은 종이 서류가 아니라 피해자의 피와 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