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봉산의 새해는 해가 아니라 냄비에서 먼저 시작됐다. 아직 어둠이 남은 새벽, 열린광장 한켠에서 피어오른 하얀 김은 ‘올해도 왔구나’라는 신호처럼 퍼졌다. 누군가에게는 해맞이보다 더 익숙한 풍경, 동대문구 배봉산 ‘복떡국’이다.
서울 동대문구가 신정(1월 1일)마다 이어가는 떡국 나눔은 이제 ‘행사’라기보다 지역의 아름다운 문화에 가깝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주민들이 스스로 차려 내고 해마다 다시 불을 지피며 새해의 첫인사를 지역의 방식으로 완성해왔다.
전농2동 마을행사추진위원회(위원장 조현석)가 주최한 ‘2026 새해 복떡국 나눔행사’가 1일 오전 6시부터 배봉산 열린광장에서 열렸다.
이 문화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떡국을 나눴기 때문이 아니다. 떡국은 ‘복’이란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제로는 안부와 관계를 나누는 그릇이 됐다. 줄을 서는 동안 오가는 말은 대부분 짧다. “추운데 괜찮으세요?” “아이 손 잡고 조심히 올라오셨어요?”
그 짧은 문장이 쌓여, 해마다 새해 첫날 이곳에 ‘공동체의 식탁’을 만든다. 모르는 사이였던 사람들이 한 그릇 앞에서 서로를 ‘구민’이 아니라 ‘이웃’으로 확인하는 순간이다.
올해도 그 식탁은 넉넉했다. 한파주의보가 예보된 추운 날씨에도 약 5000여 명이 배봉산을 찾았고, 오전 9시까지 떡국 3600여 그릇이 나눠졌다. 마을행사추진위원회와 자원봉사자들, 전농2동을 비롯한 동대문구 유관부서 직원들은 새벽부터 손발을 맞췄다.
뜨거운 그릇을 건네며 “조심하세요”를 되풀이했고, 아이들에겐 국물을 식혀 주며 “천천히”를 더했다. 그 모든 디테일이 이 행사를 ‘동네가 스스로 가꾸는 새해 풍경’으로 만들었다.
이 나눔은 올해로 13년째다. 2014년 전농2동에서 시작해 2018년부터 동대문구 행사로 이어져 이제는 ‘올해도 하는’ 행사가 아니라 ‘올해도 해야 하는’ 전통이 됐다. 동대문구는 현장에 나오지 못한 어르신들을 위해 남은 떡국떡 31박스(248kg)와 고기 등을 2일 관내 경로당 9곳과 지역아동센터 3곳에 후원했다.
떡국의 온기가 광장을 넘어, 필요한 곳으로 이어지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이필형 동대문구청장은 “새해 첫날 구민과 떡국을 나누며 출발을 함께할 수 있어 뜻깊다”며 “이 따뜻한 문화가 계속 이어지도록, 2026년에도 구민이 안전하고 행복한 일상을 누릴 수 있게 동대문구가 함께 걷겠다”고 했다.
해가 떠오르자 사람들은 각자의 소원을 마음속으로 적었다. 하지만 배봉산의 새해가 남긴 장면은 일출만이 아니었다.
새벽을 깨워 국을 끓이고, 모르는 사람에게도 따뜻한 그릇을 건네는 손길. 그 손길이 13년 동안 이어져 동대문구의 ‘새해 문화’가 됐다.
새해를 맞는 방식은 많지만, 배봉산에서는 해마다 같은 결론에 닿는다. ‘복은 멀리 있지 않다. 서로를 챙기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